유럽산 수입 가공식품을 고르다 보면, 강렬한 문양의 빨강 파랑 인증 마크가 붙어있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EU에서 운영 중인 지리적 표시제도에 따라 부여된 인증 마크인데, 간단하게 말해 ‘지역 특산품 인증’입니다. 빨간색 DOP는 더 엄격한 조건의 지리적 표시 인증, 파란색 IGP는 비교적 완화된 조건의 지리적 표시 인증이죠. 헬스베버리지에서 공식 수입*판매 중인 구에르조니 유기농 발사믹 DOP 및 IGP 또한 이탈리아 모데나 지역의 특산품으로서, 지리적 표시 인증을 받았습니다.

간혹 그리스나 스페인, 심지어 미국에서도 ‘발사믹’이란 이름으로 제품이 생산됩니다만, 그건 마치 “영국에서 생산되는 돌산갓김치” 같은 느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EU의 지리적 표시제에 관하여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1. DOP ;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D.O.P. 혹은 P.D.O.(A.O.P.)는 ‘원산지 명칭 보호’ 정도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특산지의 지명이 명칭에 포함되죠.

<예시> 여수 돌산갓김치 DOP ; 전남 여수 돌산에서 길러낸 갓을 사용하여 여수에서 여수의 노하우로 생산한 전통 갓김치.

2. IGP ; Protected Geograghical Indication 

I.G.P. 혹은 P.G.I.는 ‘지리적 표시 보호’로 번역할 수 있으며, D.O.P.에 비해 그 엄격함이 덜하지만ㅡ 여전히 특산품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예시> 여수 돌산갓김치 IGP ; 경북 포항에서 길러낸 갓을 가져다가 여수에서 여수의 노하우로 생산한 갓김치.

발사믹 관련 EU에서 인정되는 지리적 표시 인증을 획득한 지역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Emilia Romagna)주 뿐입니다. 발사믹의 명산지인 모데나와 레조에밀리아는 이에 속합니다.(사실 ‘지역이 인증을 획득했다’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고, 특정 지역의 특산품에 그 지역의 이름 혹은 고유의 명칭을 달고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한 뒤 법으로 보호한다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 Aceto Balsamico Tradizionale di Modena, D.O.P.

  모데나 전통 발사믹 식초

- Aceto Balsamico Tradizionale di Reggio Emilia, D.O.P.

  레조에밀리아 전통 발사믹 식초

- Aceto Balsamico di Modena, I.G.P.

  모데나 발사믹 식초(레조에밀리아를 포함한다)

보통 발사믹은 올리브오일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에서인지, 올리브 재배가 활발한 국가들에서는 대체로 발사믹 식초를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나 스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네요. 아니 그런데, 진짜 궁금해서 여쭤봅니다만, 정말 영국산 돌산갓김치를 드시겠어요?

여담 하나.

실제 ‘여수돌산갓김치’는 ‘여수돌산갓’과 함께 국내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지리적 표시가 보호되는 제품(PGI)입니다. 국내에는 PDO과 PGI를 구분하는 개념이 도입되지 않았으며, 본문의 예시는 EU의 지리적 표시제를 적용한다는 전제로 든 것임을 밝힙니다.

여담 둘.

수입사 혹은 판매사에서 ‘발사믹 IGP’라고만 칭하고 그 내용의 핵심인(본래의 정식 명칭에 포함된)  지명(모데나)을 생략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지명은 당연히 모데나이기 때문에 편의상 생략해서 줄여 부르는 것이거나,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거나.

여담 셋.

구에르조니에서 만드는 발사믹 IGP는 발사믹 DOP를 만드는 과정에 있는 숙성 과즙을 사용합니다. 어디 다른 지역이나 국가에서 수입된 포도가 아닌, 구에르조니 집안의 바이오다이내믹 빈야드에서 길러낸 유기농 포도를 사용한 동일한 숙성 과즙 말이죠.